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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날 53년 관련 이야기---이돈희

이돈희 | 2021.10.13 21:58 | 조회 1222
조은비 기자  | 입력 : 2021/10/11 [21:21]

 

 [시 론] 노인의 날 53년 관련 이야기

 

대한노인신문 수석논설위원/ 노인의 날 만든 靑波 · 靑山 이 돈 희

 

-역사의 기록을 찾아서

 

1.광고 캠패인

 

노인의 날을 둡시다!

  

제가 만든 아버지날과 노인의 날을 소개하면서희박해가는 경로사상과 노인보호심을 고조시키 위해 노인의 날만은 국가에서 시행해 주길 호소합니다즉 아버지날 108일은 부모님의 중요성에 비추어 어머니날만 있는게 이상해 고2때인 1963년5월에  이대ㆍ숙대ㆍ선린상고ㆍ용산고생 등등 천 이백여명에게 앙케이트 조사해 만든 적이 있으며, 기독교 방송 할머니 안녕하세요』 프로에서 제가  서너번 방송한 바도 있듯이, 우리나라의 아버지날을 만든 체험으로 대학졸업반때인 1968년5월에 노인의 날을 만들었습니다.

 

1968년 1월 어느 추운 겨울 날아들이 유명인사이며 방송국에도 출연하는 인텔리를 며느리로 두셨다는 75세의 할아버지께서 저의 집에 구걸하러 오신 것에 충격받고, 부모 자식 ㆍ시아버지ㆍ 며느리간에  이래서야 되겠는가 싶어, 주위의 백여명과 토론하고 노인정이나 경로당에 계시는 노인분들의 의견을 참고하여 만든 것이 노인의 날입니다.

 

위는 제가 경험한 하나의 예에 불과 하지만,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우리 주변에는 자손이 없어 불우한 노인자손이 있어도 멸시와 학대받는 노인사회나 직장으로부터 소외당하는 노인들이 너무나 많습니다귀하가 앞의 입장이라면 어떻겠습니까희망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양로원의 노인들을 상상해 보십시오노인이라고 처음부터 노인은 아니셨습니다. 그 분들도 어린 시절도 있었고 희망과 포부로 가득 찼던 젊은 시절도 있었습니다살다보니 늙으신 것입니다.

 

각 언론기관 및 정치가 ㆍ유명인사ㆍ 여성단체 임원 여러분!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위해 우리 사회 전체가 1년에 하루만이라도 더 힘써 줄 방안은 없겠습니까? 1년 365일이  무슨 날 무슨 날 해서 다 무슨 날이 되다시피 했지만, 제가 노인의 날을 추가하려 함은 여기에 까닭이 있습니다협조해 주시지 않으시렵니까물론 지금은 세계적인 호응을 받고 있는 어머니날을 사회적 기반이 튼튼한 41세에 민든 안나 야르비스 여사님도 처음엔 사회로부터 인정은커녕 냉대와 심한 조소를 받았는가 하면 만드는 중에 어려움이 너무 많아 어머니날을 만들기를 후회까지 했습니다.

 

하물며 이제 24살의 청년인 제가 3년전에 노인의 날을 만들었다고 해서 누구에게 인정받기를 바라겠습니까만 200만명 이상의 노인분들을 위한 노인의 날이 있어야 한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으며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겁니다더구나 제가 한국에서 청년이 만든 노인의 날이 세계에서 거의 처음일 것입니다어린이날이나 어머니날처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도 좋지만 한국에서 만든 노인의 날이 외국에 수출되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그렇게 되기 위해 뜻있는 여러분들께서 각별히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노인의 날을 만들기 위해 여러 신문사와 방송국에 보내는 원고를 쓰고 찢고 보내고 또 보내느라 없엔 원고지가 1천장이 넘습니다모 방송국에는 한번 나가기 위해 15회 가량을 투고했으니까요처음엔  반응이 없더라고요소위 『무명인의 비애』입니다저처럼 무명인이나 개인은 한없이 약하지만 앞으로 여러분들의 도움있으시면 결코 어려운 일만도 아닐 것입니다모두가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요무관심하다가는 외국에 선수를 빼앗길지도 모릅니다국가에서도 제정이 될 듯 말듯하면서도 자꾸만 연기되고 있는데 용단을 내리시어 내년에는 기필코 노인의 날을 제정해주길 바랍니다.

 

제가 많은 분들의 의견을 토대로 만든 노인의 날 날짜는, 5월8일 어머니날을 한달 앞둔  48일입니다만 날짜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우리나라에  매년 노인을 위하는 노인의 날이 탄생되면 되지 굳이 날짜가  중요한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노인들은 자녀들과 손자손녀등 장년이나 젊은이들이 보살펴 드리며 공경해야 합니다모쪼록 사회의 선배님이요 인생백과사전이자 우리의 어버이의 부모이요 조부모이신 노인들을 위한 노인의 날 제정을 위해 뜻있으신 여러분들과 국가에 다시 한번 노인의 날을 둘 것을 홋소 합니다.1970년 9월 이돈희<서울 마포구 도화동 278>

 

 

▲ 51년전 1970.10.9. 한글날에 동아방송국 편성부에서 보내온 편지    ©월드레코드

 

▲  1970.10.9. 한글날에 동아방송국 편성부에서 보내온 편지 © 월드레코드  

 

2. 방송 캠페인

 

 이돈희 선생 귀하

 

전략하옵고-

귀하의 광고 캠페인 잘 읽었습니다.

 

다름 아니오라 귀하여 그 광고와 저희들이 생각하고 있는 캠페인이 우연의 일치를 가져 온 것같습니다이 우연의 일치가 결코 우연만은 아니라 생각하오며 꼭 저희들이 해야할 일이라 여깁니다정말 기쁩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이 문제를 생각해오신 귀하의 고견을 듣고 싶사오니 시간있으신대로 일차 저희 방송국을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귀하여 고견 꼭 듣고 싶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총총

 

1970.10.9 한글날에

동아방송국 편성부 박승렬 배상

 

 

해 설 자료 :

1. 광고 캠페인: 1970년 9월 27일과 104(중앙일보사 자매지 주간중앙에 2회 광고 )

2. 방송 캠페인: 1970년 1028일과 113(DBS 동아방송 2회 출연 )

 

여기서 1. 광고 캠페인이란 1970년도 927일자와 10월4일자 주간중앙에 2회 크게 광고낸 <노인의 날을 둡시다!>란 광고 캠패인을 말하는 것이다. 노인의 날을 값 비싼 광고해서 사회의 호응받고, 국가에서  제정을 하게 할 날은 아니지만, 무명인에게 다른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

 

사실 저는 51년전 23세 청년으로 무명인 시절에 동아방송에 출연해서 노인의 날 만든 이야기를 방송하고 싶어도 초대받지 못했다지금도 노인 프로는 인기가 없어 노인 프로가 없는 방송국이  대부분이고 당시의 동아방송에도 노인 프로가 없었다.

 

50여년전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도 아닌 20대 청년인 저에게 당시 어느 방송국의  어떤 프로에서도 아는 프로듀서아나운서작가가 한 사람도 없던 무명인이라 한국의 『아버지날』 과 『노인의 날』을 만든 취지를 설명해도 아무도 출연시켜 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당시 동아방송의 전영우 아나운서실장이 사회를 보던 <유쾌한 응접실이라는 인기 토크 프로에 단골 출연하시는 양주동 박사 · 한국남 박사 ㆍ조풍연 선생님 등에게  노인들을 위하여 꼭 하고 싶은 이야기나 사연을 방송국으로 써 보내면그 분들이 방송 소재로 삼아 당신들의 목소리로 하는 방송이므로고심하며 심혈 기울여 써 보낸 제 생각이 방송되면서도 정작 원작자(?)인 저의 존재나 목소리는 일체 없었던 서러운 시절(?)이었기 때문에그 토크 프로에 출연해서 노인들과 노인의 날에 관한 이야기를 한번 할 수 있으면 다른 소원이 없겠다 하던 바로 그 시절에, CBS 기독교 방송에 뒤이어, DBS 동아방송의  박승렬 PD님의 친필 편지를 받았으니보동사람들이  원하는 대학교에 합격하거나 취직이 되었어도 이만큼은 기쁘지 않았을 같았다.

 

동이일보사 원고용지’ 라고 선명히 인쇄된 원고지에 달필로 쓴 그 편지를 들고서, “신문!” 하면 팔릴 때마다 노인문제 해결을 위한  비용이 된다는 생각으로 주말에 가판하던 광화문의 동아일보사를 찾아가는 제 마음은 그녀를 만나러 가는 준비만큼 참으로 기뻤다.

 

저 같은 무명인은 아무리 찾아가도 관심 없어 해서 딴 세상 사람으로 보여지고, 부럽던 DBS 동아방송의 PD 로부터 '선생' , '고견' 하면서 방문하라니, 맨 처음 출연한 기독교방송에 이어 동아방송에도 출연하기 시작하면, " 200만명의 노인들을 위한 노인의 날을 만들어라." 하시는 하느님이 제게 주신 원대한 사명이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게 되리라는 생각으로 잠이 잘 안 왔다. 당시 65세 이상 2백만명 노인이 50년후인 지금은 840만명으로 640만명이나 증가했다.

 

 

2. 방송 캠페인이란 박승렬 PD를 만나 방송 출연 일정을 협의한 결과, 1019일부터 118일까지 하는 리디오 방송  <뭐든지 의논하고 대화를 나눕시다> 란 방송 캠페인 프로에서 여러 전문가들이 의견을 방송하기로 한 프로인데저는 1021일과 1031일에 녹음하고 1028일과 113일에 방송하게 하면서젊은 청년이 노인의 날을 만드는 것은 한국에서 처음인 대단한 일이라며노고를 치하해 주었다이후로 다른 방송국과 신문사 잡지사 등 언론기관에서도 출연, 초대 받기가 차츰차츰 쉬워졌다

 

지금은 5살짜리 꼬마 아이도 방송국 마이크 앞에서 말도 잘하고 연기도 깜찍하게 잘 하지만녹음기 하나 없었던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동아방송을 통해서도 알려진다는 긴장감에녹음에 서툰 저를 동생처럼 안심시켜 주었던 박승렬 PD님과의 인연 소중하게 생각하여 감사드린다. 51년전에 처음 만났던 박승렬 PD이 지금도 생존해 계시는지 궁금하다계시다면좋아하시는 음식 대접하고저서 두기지를  재회하는 선물로 꼭 드리고 싶다.

 

50년전 전후해서 제가 이주 무명인 시절 그들을 부러워하며 찾아뵙던 주요 일간 신문사ㆍ월간지ㆍ주간지ㆍ방송국의 프로듀서와 아나운서ㆍ기자ㆍ적가들이 이미 다 은퇴했거나 선종(소천)했다. 고마움의 표시로 식사와 커피하 한번 사 드리고 싶은데  연락이 안되어 아쉽다. 50년전 제가 살던 서울 마포에는 노인의 날을 행사를 거행할 만큼의 넓은 예식장이 없어 서울 신촌로터리 예식장(현 신촌웨딩홀)을 대관하여 행사를 하게되었다. 

 

마포에 살다보니 제가 내빈으로 초대한 인물이, 마포의 기관장인 마포구청장,경찰서장,  학교 교장선생님 등이었고,  마포에 살지 않지만 이 행사에 기꺼이 참석해주신 김현옥 전 부산ㆍ서울시장ㆍ내무부 장관과 대한노인회중앙회 김공평 회장이셨다. 국가에서 주최하는 연례 행사도 아닌, 무명 청년으로 처음 노인의 날을 시범으로 행사하겠다는 열혈 청년이 있다 해서, 공무에 바쁜 현역 구청장님과 경찰서장님을 행사장으로 모셔서 축사와 장수상을 시상하게 하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일까? 

 

아무리 우리나라에서 하는 첫 노인의 날 행사라지만, 김현옥 전부산시장ㆍ서울시장이신 김현옥 전내무부장관이 직접 참석하시어 식순의 축사를 해 주시고, 마포나 신촌의  노인회 지부 회장도 아닌 김공평 제 2대 대한노인회중앙회장님이 21살 대학생이 노인의 날 만들고 3년의 이란 준비기간을 거친 24살 무명 청년이 그 노인의 날을 직접 행사 한다고 참석해 주시고, 대한노인회중앙회는 후원기관의 하나가 되어주고, 당신은 노인의 날 행사의  고문의 한 분으로  취임 승락해주셨다.(지금으로 말하면 김호일 제18대 대한노인회중앙회장이다.) 이런 분들을 행사 고문으로 식순의 축사를 하게  실행하자니 정말  힘들었다. 

 

그러나 선각자는 다르시다. 노인분들의 단체인 사단법인 대한노인회중앙회에서도 안 만든, 노인분들을 위한, 노인분들의 제 3의 생일인  『노인의 날』을 20대  젊은 청년이 만들어 주는 것은, 참으로 장한 일이라시며,  당신의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고 치사를 해주셨고, 노인의 날 행사 15일후에 있은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전국 각처에 계신 노인분들이 참석하신  제2회 대한노인회 창립기념식에서 식순에 따라 제게 표창장을 주셨다.  그 표창장의 전문을 적어 보면 이러하다. " 표창장 서울특별시 마포구 도화동 이돈희 이 분은 20대 젊은 청년으로 경로정신에 투철하여 다년간 노인복지 향상에 헌신중에 있어 노인사회에 기여하는 바 지대하므로 그 공로에 치하하고 이에 표창합니다. 1971.4.23 사단법인 대한노인회 회장 김공평 " 

 

아뭏든 현역인 그 바쁘신 분들이, 아랫 사람이나 비서를 대신 참석하게 하지 않고 직접  참석해 주셨다.  여러분이 직접하는 처음하시는 행사에 이러한 직위의 분들을 초대해보시라, 직접 참석하게 하기가 얼마나 어려울까를 실감하실 것이다. 

 저의 용기와 불굴의 도전에 그 분들 행사장에  직접 참석해 주셨고,  한국일보, 가톨릭신문, 서울시 발행인 『주긴시민』 신문이 인터뷰한 후 BOX 기사로 실어주었다. CBS에서는,  염영식 제작부장님의 협조하에 이영우 PD 가  행사장에 와서 행사 실황 모든 과정을 직접 녹음해서 다음 날 『할머니 안녕하세요』 시간에 편집하여, 저의 출연과 함께 행사장 방송이 나갔다.

 

솔직히 말씀드려 제가  올바로 믿는 예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셨으면, 이런 일은 어느 누구라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저를 도와주신 많은 분들 중 미국에 여행중에 반갑게 만닌 분도 있지만 지금 다 어디 사시는지, 생사여부도 모르지만, 그저 고마우시다는 말씀을 전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릴 뿐이다. 혹시 그 당시의 인사들이 이 [시론]을 보시면 연락있으시길 바란다. 세월의  무상함을 더듬시면서-.

 

한가지 더, 30년전 1991년 1019일에는, MBC 문화방송의 주병진·노사연 담당의 인기 프로인 주병진 노사연의 100분 쇼에 초대되어 출연한 덕분에 방송도 하고그들에게 사인도 해주고, 두 사람의  "이돈희 선생님 건강하세요!" 라는 문귀와 함께  멋있는 일필휘지의 사인도 받았다연예인이 아닌 저의 사인이라야 정부투자기관인 한국토지공사에 재직하면서 결제서류에 이름 쓰는 정도이니 사인이랄 것도 아니지만주병진님 노사연님과 같이 출연한 가수 김흥국님까지한 멋드러진 사인을 사무실에 가지고 갔더니젊은 남녀 직원들이 서로 경쟁하듯 뺐어가서 복사해  나눠 가지던 기억이 새롭다저보다 나이가 10년 전후 아래로 방송 인연 맺은  주병진 노사연 김흥국 동생뻘들이 건강하길 바라고 있다. 옷깉만 스처도 인연이라는데, 대화와 웃음울 나누며 MBC에서 방송까지 같이 했으니! 이처럼 인연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드리는 것이 사람의 도리이다. 지금도 방송에서 가끔 노사연을 볼 때면, 30년전 그 때가 생각나고 마치 열살 아래 동생처럼 여겨진다.  

 

제가 위 광고 캠페인과 방송 캠페인을 한 다음해인 1971년 48일에한국에서 최초로 서울 신촌에 소재한 한 예식장에서 시범적인 제 1회 노인의 날 행사를 거행했었다정부에서는 이 행사 28년후인 1997년에야 노인의 날을 제정해 제 1회 행사를 했으며, 9일전인 지난 102일로 제25회 노인의 날이 지나갔다. 정부 부처인 보건복지부 주최대한노인회 중앙회 주관인  제 25회 노인의 날 행사에서 노인들을 위해 애쓰시는 분들 110명에게 훈· 포장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표창이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있었다. 25년 동안에 참으로 많은 수상자들이 나왔고, 이 노인의 날 덕분에.  노인에 대한 사회인식도 많이 발전하고 노인복지도 눈부시게 향상했다.

 

한가지 아쉽다면, 제가 53년전 1968년에 만든 『노인의 날』에 뒤이어 29년이 흐른 1997년에 제정한  정부의 『노인의 날』을 매년 『노인의 날』이라고 보건복지부 주관과  전국 각 자방자치단체 등에서 실시하는 『노인의 날』을  행사로만 끝나지 말고,  정부에서 공휴일로 지정하라는 점이다.

 

그 예로  방정환 선생이  1922년에  어린이들을 위해 만든 어린이날도 방정환 선생이 만드신지 48년만인 1970년에' 국가에서 공휴일로 지정이 되었다. 1968년에  제가 만든 노인의 날도 만든지 53년이나 되었으니, 이 노인의 날도 공휴일로 지정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물론 제가 이 날을만든 후부터  공휴일로 지정할 것을 계속 제안했으나 아직까지도 공휴일로 지정되질 않고 있다.

 

대한노인신문ㆍ대한노인회중앙회ㆍ도전한국인본부, 노인사회에 관심이 있는 다른 기관이나 단체에서 건의하든지, 건의를 받아드릴 수순 없이도 이제는 『노인의 날』 행사를 주최하는 정부 부처인 보건복지부에서 이 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정책으로 전환하여,  840만명의  노인분들의 제 3의 생일인  『노인의 날』을 공휴일로 하기를 다시 제언한다.

 

19대 문재인 정부에서 노인의 날은 지난 10월2일로 모두 끝났으니, 20대 정부나 22대 정부에서는 누가 대통령과 국무위원이 되든,  노인의 날을 새로 제정하는 것도 아닌, 기왕에 제정되어 매년 행사하고 있는  노인의 날이니 만치,  노인복지 확대 차원에서 이 날을 반드시 공휴일로 지정하고, 활성화시켜 주길 바란다. 

 

지나고 보니,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 한국의 한사람인  제가 세계적인 국가단체인 국제연합 UN 보다 22년을 먼저, 세계적인 종교단체인 예수 그리스도교 로마 바티칸 가톨릭보다 50년을 먼저 노인의 날을  만들었다.  21살  대학생때 노인의 날을 만들고, 3년의  준비기간을 거처 24살에 직접 노인의 날 행사까지한 쳥년이던 제가, 강물 흐르듯 흐르는 유유히 흐르는 세월따라 어느듯 인간의 마지막 장인 74세 노년이 되었다.

 

70세를 전후한 저희 노년 또래는  대개 앞으로 5년에서 35년 정도만  더 살아서 덜 걱정이지만,  하루하루를 예측하고 믿고 살아가기 힘든 요즘 같은 난맥상인 문 티모테오 정부하의 부모들 조부모들로선, 의학의 발달로 인간수명 100세~120세를  바라보는 현실에서, 새로 태어나는 아가들, 다 큰  자녀와 자라나는 손자손녀들의 미래가 여간 걱정이 아니될 수 없다. 앞으로, 사는게 사는게 아니라는 날이 와서는 인되도록 모두 정신 차리되, 지혜를 가진 오늘의 우리 어른들이 노력하고 선거시에 투표를 잘하시라.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기 위해선 가정의 가장 기초 단위인 무엇보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가정평화의 사도가 되기를 염원하는 제가, 매일 하느님께 기도하는 기도 끝의  기도를 소개한다. " 하느님, 이 지구상의 모든 부부와 저희 부부에게 항상 서로 사랑하는 마음 갖게 하소서. 아멘!"

 

지난 5월부터 문대통령님께 청와대로 4회의 특별 청원 드렸으며,  문대통령님 내외분을 위하여 드리는 기도 1회를  드린 국민으로서, 백성으로서, 이제 남은 5개월 동안민이라도 정말 최선에 최선을 다한 정치로 마무리, 유종의 미를 이뤄주시기를 충심으로 기원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12명의 대한민국 대통령중 가장 정치 잘못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한국의 정체성도, 한국의 운명도, 한국인의 행복도 수월하지 않게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지나간 임기 53개월 동안 잘못된 정책 여러가지로 많지만 그중에서도 부동산정책이 가장 잘못되어 있다. 잘못된 부동산 정책을 그대로 둔다면 15년~20년안에 국민 거의 대부분이 지금보다  가난해지는 정책이다.

 

제가 오랫동안 고민하고 탐구한 바의 결론은, 어렵게 구축해온 70년 자유 민주주의 경제 국가인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2020년대(2020년~2029년)의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앞으로 이 나라의 정체성과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2020년대의 21대~22대 대통령과 22대~23대 국회의원들을 대다수 국민들은 올바른 후보자에게 투표하고, 당선된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은,올바른 생각과 올바른 신앙과 양심을 가지고 대다수 국민을 정치와 의정활동을 정말 잘해주기를 청원한다. 올바른 생각과  신앙을 가진 자이면, 늦어도 2050년대(2050년~2059년)에는 사라질 공산주의ㆍ 종북ㆍ주사파사상을 가지질 않는다. 하느님과 부처님을 올바로 믿으면, 공산주의ㆍ 종북ㆍ주사파 사상자가 될 수가 없다. 그렇지 아니한가? 첫 단추를 잘못 낀 것이다. 

 

권불 십년~이십년인데,  잠시 누릴 세속적인 권력이나 명예, 사회적ㆍ 정치적 지위나 입지를 위해서 공산주의자나 종북ㆍ주사파에 동조해서는 곤란하다. 저도 가톨릭 신도의 한 사람이지만 극히 소수의 가톨릭 신도나 특히 일부 사제, 정치인이  그러한 것은 상당히 잘못된 것이다. 깊이 회개하고 빠져나와야 좋다.

 

재언합니다. 부디 2020년대의 20대~21대 대통령은 정치 올바르게 , 22대~23대 국회의원들은 의정활동 올바르게 , 법조인들은 제반 법률규정을 양심을 가지고 올바르게  적용하고, 저를 포함한 국민들은  앉을자리 설자리, 해야할 자리를 올바르게 찾아서, 우리나라 3천리 금수강산 대한민국이, 자유 민주 경제 국가로, 그 5천2백만 국민들이 큰  걱정없이 노력한만큼 잘 살아가는 희망을 기지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길』  하느님께 예수님 이름으로 꾸준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10.13  이돈희 임마누엘 일부 수정 보완 )

 

이돈희 임마누엘 (UN 평화대사/세계어버이날 만든이/대한노인신문 수석부사장/도전한국인본부 총재/대한노인회중앙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