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총동창회
 
 
 
'동국장학위원’ 제도 제안 - 대한불교관음종 총무원장 홍파 스님
  • 최고관리자 | 2020.07.05 07:04 | 조회 90


    “모교에서 많이 얻었으니 후배들에게 베풀어야죠


     월 기부액 30만원 약정 역사와 전통 함께 견인해야


    서울 종로구 숭인동 언덕에 자리잡은 대한불교 관음종 총본산 묘각사. 1호선 동묘역에서 낙산 방향의 언덕배기로 10분정도 오르면 주택지 가운데 우람하고도 단아한 모습의 사찰이 나온다. 불교학과 63학번 홍파스님(77)이 바로 관음종 총무원장이자 묘각사 주지이다.

     

    홍파 스님은 자애롭고 자상한 얼굴이다. 잔잔한 평화가 어려있다. 3배를 올리고 마주앉으니 책상 앞에 놓인 커다란 대야 같은 유리그릇에 담긴 차를 나무 국자로 휘저으며 필자에게 한잔 따라주신다. 옅은 밤 색깔의 차는 달콤은은한 맛인데 다 마시면 또 채워주신다. “무슨 차냐고 물으니 보이차에 홍삼을 넣은 것이라며 속이 편하고 몸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했다. 따뜻한 품성을 지닌 분이라고 느껴졌다.

     

    불교계 단합과 소통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


    홍파 스님은 모교 불교학과 재학 시절 대학생불교연합회를 창립했으며, 국군 군법사 제도를 두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불교계의 크고 작은 연대의 자리에는 늘 홍파 스님이 있었다. 그래서 스님에게는 단합과 소통의 아이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는 조계종을 비롯 30개 종단으로 구성된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사무총장직을 31년간 맡았다. 또 수십년간 남북 불교, 한일 불교, 한중일 불교 연대의 구심점이 되었다. 이 기구의 대표를 맡으면서 아시아 불교계의 친선과 단합을 이끌었다.

     

    스님이라면 좋은 뜻으로는 개성이 있는 신분이지만, 자기 원칙에 충실한 나머지 아집과 독선적인 품성을 지닌 경우가 많다. 이렇게 각자 개성이 강하고 이해가 다른 30개 종단을 31년동안 무난하게 이끌어 왔다면 그 행정력과 조직력, 인품을 헤아릴 수 있다. 헌신과 배려와 봉사의 정신이 없으면 이룰 수 없는 성과일 것이다.

     

    100년 넘는 대학동창회서 장학기금 고갈사태는 안타까운 일


    스님이 꾸준히 지금까지 모교에 약 3000만원, 총동창회에 5000만원의 발전기금을 기부했다. 근래에는 ()동국장학회 이사로 참여해 매월 30만원의 기금 약정을 하고 후배사랑 장학위원제도 도입 등의 장학기금 확보를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냈다.

     

    -동국장학회는 매월 일정 금액을 정기 기부하는 장학위원 500명 확보를 1차 목표로 삼고,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장학기금 모금을 위해 적극 뛰어든 배경은 무엇입니까.


    “114년 전통의 동국대학교 동문이 35만명을 헤아립니다. 그런데 후배들을 위한 장학기금이 고갈되어가고 있다고 하더군요. 100년 넘은 학교의 총동창회 장학기금이 고갈되어 간다는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지요. 나는 장학회 이사직만으로 안주해선 안된다고 보고, 동문 35만명 중 단 1%3500명이라도 참여해 장학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를 제안합니다. 동문들이 사회지도층으로 활약하는 것도 모교에서 학문을 잘 닦은 인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돌려주는 것도 자비의 마음이자 자기 섬김의 자세라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지난번 매월 20만원씩 내기로 약정했는데, 기왕 나선 김에 오늘 다시 10만원 올려 매월 30만원씩 내는 것으로 약정하겠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설명을 덧붙였다.


    동국장학위원 참여 신청서를 박대신 회장에게 전달하는 홍파스님


     묘각사는 옛날로 치면 달동네에 있는 사찰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받고 낮은 신분의 사람들이 사는 동네였지요. 인근 평화시장, 동대문시장에 나가 하루하루 벌어먹고 사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사는 동네였습니다. 이들의 안식처가 되고, 보금자리가 되려면 무엇보다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것이 체질이 된 것 같습니다.”

     

    묘각사는 불우청소년들의 디딤돌 ... '좌경'으로 몰려 고초 겪기도


    홍파 스님은 청년시절부터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평화시장 직공, 구두닦이, 신문배달을 하는 인근 가난한 소년들을 모아 야학으로 향학열을 일깨워주었다. 이를 점차 늘려 전국 23개 사찰로 확대했다. 그러면서 이들의 취약한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일에 나섰다. 그는 늘 이렇게 실천현장에 있었다. 이런 현장에 고 여익구 동문 등이 함께 했다. 불우한 소년들이 검정고시에 합격해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보고 보람을 느꼈다.

     

    그런데 어느날 체포되었어요. 나는 어느 순간에 좌경의 원조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유신 말기, 검은 잠바 차림의 남자 세명이 시경에서 나왔다며 묘각사에 들이닥쳤다. 스님은 갈 이유가 없다고 버텼지만 강제로 지프차에 태워져 어디론가 갔다.

     

    눈가리개로 눈을 가려서 어디로 가는지 몰랐지요. 한참을 언덕을 오르고 내리는 것 같더니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어떤 건물로 들어간 것 같았습니다. 알고 보니 남대문 인근의 서울 시경이 아니라 바로 남산 중앙정보부였습니다. 모교가 가깝게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스님은 침낭 하나만 놓인 취조실에 갇혔다. 취조관은 그에게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쓰라고 원고지 한권을 주고 나갔다. 써주었더니 돌아와 거짓말을 썼다고 다시 쓰라고 강요했다. 함께 활동한 친구 10명 이상을 쓰라고도 협박했다.

     

    쓸 게 없어서 아리랑가사를 수십 번 써주었지요. 그리고 매일 500배를 하며 큰 소리로 염불을 외었지요. 면벽 수행도 하는데 좋은 기회다 여기고 매일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 어느날 취조관이 노조운동과 야학운동으로 반정부활동, 반사회운동을 한 내막을 따지더군요. 나는 불교가 가는 곳이 그런 곳이라고 했지요.”

     

    -남북 불교 교류에도 중심 역할을 하셨지요?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사무총장직을 수행하면서 1989년부터 북한의 조선불교도연맹(조불련)과 교류해 199110월 미국 LA에서 결실을 맺었습니다. 이때 남북해외불교도 조국통일기원 남북합동법회를 봉행했지요.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 북측에 서울과 평양에서 합동법회를 갖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북측이 난색을 표하더군요.”

     

    남북 불교 - 한일 불교 교류에 앞장선 국내외 포교사 역할 '톡톡'


    홍파 스님은 저녁 공양 후 조불련의 심상진 서기장이 묵고 있는 호텔을 찾았다. 그는 낙산 묘각사 사진과 어렵게 지내온 지난 활동상을 전하며 소통한 끝에 마침내 답을 끌어냈다. 이후 부처님오신날 남북 공동발원문 채택이 결정되었고, 종단협 금강산 순례(1999), 서울 봉은사 3.1남북불교도 합동법회(2003), 평양 광법사 8.15남북불교도 합동법회(2007)가 봉행되었다.

     

    홍파 스님은 지난해 11월 펴낸 잠언집 아침이 힘든 당신에게’(모과나무간행)에서 다른 견해의 구절에 이렇게 설파하고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견해를 내놓습니다. 세상은 자기 주장과 견해가 옳다며 논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다툼을 멈추는 방법은 상대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어디에도 길은 있습니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방법의 차이일 뿐입니다.

     

    스님의 품성을 그대로 읽을 수 있는 대목 같다


      이계홍 본회 홍보위원장과 인터뷰 중인 홍파스님

     

    -묘각사의 주요 사업은 어떤 것이 있나요.

    외국인 템플 스테이입니다. 묘각사는 종로구 관광 지정 사찰에다, 템플스테이 우수사찰로 10년째 지정되었습니다. 지금까지 35000명의 외국인이 다녀갔는데 주요 국가는 미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영국 등입니다. 불교국가가 아니라 서구 중심의 템플스테이여서 한국불교와 한국문화를 전수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서울 도심 위치, 외국인 템플스테이로 한국문화 전수에 보람 

     

    묘각사가 외국인 템플스테이의 강점을 갖고 있는 것은 한국의 전통문화가 깃들어 있는 종로구에 소재하고 있다는 점, 한번에 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3인실, 4인실, 5인실로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는 점, 그리고 알찬 프로그램 운영 때문이다. 예불 108참선과 명상 차담(茶談) 등 현대인 누구나 편안하게 찾아와 위로받고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다만 현재는 코로나 19 때문에 템플스테이가 중단되고 있다.

     

    유서 깊은 명성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 정세균 총리, 이낙연 전총리 등이 묘각사를 찾았다.

     

    -모교 재학시절 인상 깊었던 일이 있다면 소개해주시죠.

    대불련 창립 때의 일입니다. 초대 회장은 서울법대생이 했고, 3대 때 내가 서울법대, 고대 정치과생과 경합을 했지요. 한사람씩 토론을 하는데 서울법대가 먼저 기권하고, 그뒤 고대가 후보 사퇴를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내가 회장으로 선출되었는데, 집행부 구성 때 서울법대에 총무부장, 고대에 의회의장을 맡겼습니다. 조직은 구성원간의 단합이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래서 잘 꾸려갔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대불련이 전국대학생불교신행단체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때의 대불련 지도교수가 모교의 김동화, 홍정식, 이기영, 박성배, 서경수 박사였다. 불교계에서는 청담, 능가, 법정, 광덕, 혜정 스님이었다.

     

    스님은 다시 한번 장학기금에 관해 강조한다.


    '동국장학위원'에 35만 동문 1%인 3천5백명은 참여해야

     

    총동창회가 매월 일정금액 정기 기부자를 500명 목표로 하고 있지만, 35만 동문의 1%(3500)는 참여해야 한다고 봅니다. 후배들의 면학 정진을 위해 지원하는 동국장학회가 매년 보유기금 부족 현상을 겪는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동문들의 사회적 명성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동국 캠퍼스에서 익힌 학문의 성과가 빛을 발한 결과입니다. 그 성과를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나누어주는 것은 선배들이 해야 할 몫입니다.”

     

    한편 장학기금 모금은 올해부터 3년 주기 4단계로 나누어 총 100억원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참여자의 월 기부액은 3만원 5만원 10만원 20만원 이상의 금액으로 구분되며 일시불도 가능하다.


    <이계홍 홍보소통위원장ᐧ65국문>


    5월30일(윤 4월8일)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서 내외귀빈들과 축하떡을 자르는 홍파스님(중앙). 홍파스님 왼쪽은 박대신 본회 회장, 오른쪽은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맨 오른쪽은 대한불교관음종 전국신도장 최윤섭 동문. 이날 법요식에서는 정세균 국무총리와 종로구청장 등이 참석해 축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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