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총동창회
 
 
 
한미민주연합회 회장 배시영 동문
  • 최고관리자 | 2018.12.04 16:55 | 조회 2486

    뉴욕에서는 43년 전통의 동국대동창회가 단연 최고죠

     

    동부지역동창회 창립 원년 멤버이자 한인사회 리더로 큰 활약

    개교 100주년때 모교 방문 동문들 활약상에 남다른 자부심

     

    미주 동부지역 동국대동창회 창립의 원년멤버로 40년 넘게 뉴욕에서 동국인의 맏형 역할을 해온 배시영(경제58) 뉴욕동문회 고문의 동국사랑은 지극했다. 배 고문은 전영화 총동창회장을 비롯한 동창회 임원들이 뉴욕지역 동문들을 만나기 위해 인근에 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8순 고령임에도 김영재(경행72, 三州건설그룹 회장) 전 회장과 함께 먼 거리를 단숨에 달려와 반갑게 맞아주었다. 배 고문과 총동창회 임원간의 만남은 가족 이상의 화기애애한 대화가 이어져 시간가는 줄 몰랐다.

     

    - 우선 뉴욕동문회 소개와 활동 들을 듣고 싶습니다.

     

    1970년대초 동국대 뉴욕동문회가 창립되었는데, 당시 파악된 동문들의 수가 100여명이 넘었습니다. 모국을 떠나 이역만리에 나와 있다보니 모교와 친구들이 그리운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뜻있는 동문 몇이서 미주한국일보에 동국대학교 뉴욕동창회 창립총회 광고를 내고 동문 찾기를 한 것입니다. 뉴욕 맨하튼 59번가에 있는 유명 음식점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선후배할 것 없이 120여명이 참가하는 대성황이었죠. 초대회장은 장진건(사학, 뉴욕우래옥 대표), 총무는 최무남(경행66)동문이 맡았습니다. 미국에 나와 있는 각 대학 동창회중 우리 동국대가 가장 먼저 창립 테이프를 끊었으며, 다음해에 경희대, 중앙대 등이 뒤따라 동창회를 결성했어요. 서울대 나온 지인은 서울대는 잘 안되는데 동국대가 잘 되는 이유가 뭐냐고 물어요, 그래서 동국대는 기질이 있고, 의리로 똘똘 뭉친다고 말 한 적이 있습니다.

    주요 활동으로는 매월 정기 모임격인 골프대회, 야유회, 가족동반 등산대회와 신년회 등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특히 신년회 때는 TV 등 다양한 경품들이 협찬되어 모두에게 푸짐한 선물을 안기고, 참석 동문들끼리 어깨 동무를 하고 교가를 부르며 동국인의 자부심을 나눕니다.

    3월부터 11월까지는 매월 3째주 토요일에 골프대회 겸 가족 등산모임을 하고 있는데 40여명 정도 참가하고 있으며, 송년회 때는 100여명이 모입니다.

    3월부터 11월까지는 매월 3째주 토요일에 골프대회를 하고 있는데 40여명 정도 참가하고 있으며, 신년회때는 100여명이 모입니다. 그리고 20년전에 시카고에 계신 이태근 선배님과 함께 창립한 전미주총동창회는 워싱톤에 차경훈, 뉴욕에 김상목, LA에 김경재회장을 비롯해 현재 뉴욕에 김영재회장으로 이어지며 매년 총회를 열어 미 전지역과 캐나다에서 까지 동문이 모여서 서로 안부를 물으며 친목을 다지고 모교사랑의 의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 우리 뉴욕동창회 고문외에도 한미민주연합회 회장으로도 여러 활동을 하고 계시더군요. 어떤 활동들을 하셨나요?

     

    재미 한인단체인 한미민주연합회 회장을 맡아 20033월 하순에 이라크전 참전군인들의 무사귀환을 위한 노란 리본달기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뉴욕한국일보와 공동으로 진행한 이 캠페인은 한인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펼쳐졌으며, 뉴욕출신의 개리 애커맨 연방 하원의원과 뉴욕주 및 뉴욕시 의원등도 참석해 더욱 관심을 모았죠.

    그보다도 1992년 한국의 유엔가입 1주년을 기념해 열었던 장사씨름대회는 잊을 수 없습니다. 제가 회장을 맡은 한미민주연합회와 범미주무궁화협회가 공동 주관하고 한국씨름연맹과 KBS가 공동 주최했는데 뉴욕의 중심 34번가, 그것도 세기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챔피언전을 가진 유명한 메디슨스퀘어가든에서 가졌다는 것이 대단했지요. 한국에서 선수단 초청하고, 연예인 부르고, 또 메디슨스퀘어가든 장소 사용을 위해 27개 각종 단체의 동의를 받고, 덤프트럭 10대의 모래를 깔고, 소방차 대기하고 준비과정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대신 미국사회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국의 전통 씨름을 홍보한 것으로 보상받은 셈이죠. 이 대회를 3회나 치렀으니 지금 생각해봐도 대단한 행사였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이어지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1983년 제2미주 한인체육대회가 뉴욕에서 열린 이래 38년만인 2021년에 제21회 대회가 뉴욕에서 개최되는데 고문님께서 이 대회 뉴욕유치위원장으로 역할이 컸다고 들었습니다.

     

    미주체전 뉴욕유치위원회 고문을 맡아 체육을 통해 뉴욕과 미 전국의 한인사회 결집을 위한 비전을 제시한다는 취지에서 적극 뛰었는데 다행히 결과가 좋았습니다. 뉴욕에서 개최되면 한인사회의 새로운 도약과 분위기 전환점이 된다고 강조했고, 특히 세계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 뉴욕에서 체육뿐만 아니라 문화를 곁들인 역대 최대 · 최고 대회를 치르면 한국인의 자존감과 자부심을 크게 선양된다고 열심히 홍보했습니다. 이제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더 바빠지고 있습니다. 그때 우리 동국대 동창회 방문단이 오신다면 적극 환영하겠습니다.

     

    -해외에 나가 계셔도 모교가 잘되었으면 하는 바램은 한결 같으실 줄 압니다. 모교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주시십시오.

     

    총동창회(회장 권노갑)에서 지난 19991013일까지 북미주 동문들을 초청해 환영연 및 동국인체육대회를 가졌는데 제가 북미주총동창회장을 맡아 이민휘(정치52) 이태근(정치56) 장정헌(경영63) 동문 등 135명이 모교를 방문했습니다. 모교 이사장 녹원스님, 송석구 총장, 총동창회 황명수 명예회장, 류주형 수석부회장 등 재단 학교 동창회에서 대대적으로 환영해주어 감명 깊었습니다. 그때 체육대회를 위해 경주캠퍼스도 방문했는데 서울캠퍼스의 달라진 모습과 경주캠퍼스 교정을 돌아보고 눈부신 발전에 모두들 흐뭇해하던 동문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는군요. 미주동문들의 사기 진작과 조직 활성화에 큰 뒷받침을 했습니다.

    지금은 더 많이 변했겠죠? 기회가 된다면 그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모교를 다시한번 방문해보고 싶습니다. 여기서 듣기로는 다들 열심히 잘하고 계십디다. 위상도 많이 높아졌고요. 다만 한가지 건의사항이 있는데, 그것은 여름방학을 이용해 해외교포 자녀들을 유치해서 써머스쿨을 운영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해외교포 2, 3세들에게 한민족의 역사와 뿌리를 가르쳐주고,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자는 거죠. 제 손자가 2000년 초에 연세대에서 주관하는 해외동포 써머스쿨에 다녀왔는데 뉴욕에 있는 한글 간판도 읽을 줄 알고, 뉴스에 Korea만 나와도 프라우드하게 생각하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지금도 늦지는 않았습니다. 서울, 경주, 일산 캠퍼스와 각 지역별 동창회, 그리고 불교종립학교라는 메리트인 템플스테이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가 되리라 봅니다. 모교의 세계화를 멀리서, 단번에 이루겠다는 생각보다는 작은 부분이라도 하나씩 씨를 뿌려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교에서 당장 내년이라도 이 써머스쿨 개설 의지가 있다면 제가 앞장서서라도 모교에 150200명정도는 보내 줄 자신이 있습니다.

     

    -화제를 바꿔보겠습니다. 고문님께서는 재학시절에 4.19민주혁명 대열에도 참가하시고, 1961년엔 총학생회장을 지내 동문사회에 많이 알려진 편입니다. 그리고 미국에 다녀온 동문들마다 고문님 이야기를 많이 하고들 있습니다만

     

    19604.19때는 3학년이었으니까 당연히 참가했었지요. 20104.19 50주년을 맞아 유공자로 선정되어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을 받았습니다. 사실 재학시절 학생활동을 하면서 에피소드도 많지만 여기서 다 말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학생회장으로서 최선을 다해 후회는 없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같은 시기의 선후배, 동기로서 함께 학창시절을 보낸 김동영 최형우 장충준 김영구 신민선 동문 등이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는 무척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살다보니 모교 총장이나 동문들이 찾아왔을 때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가리지 않고 만났습니다. 최재구 동창회장을 비롯 박완일(불교57, 조계종 전국불교신도회장), 김재형(국문57, KBS드라마국장) 선배와의 만남에 에피소드도 많지요. 모교부총장 오법안스님, 이재형(불교64)­문정희(66국문, 여류시인) 후배부부 등과의 뉴욕에서의 인연들도 각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동문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동문관계는 한 가족이나 다름없습니다. 동문이라는 말 한마디가 때로는 피보다 진하게 느껴집니다. 서로 소통하고 상생하면서 동국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었으면 합니다. “동국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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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시영 고문은 1964년 가업인 조광무역(당시 국내 납세 순위 28) 미주시장 조사를 위해 미국을 처음 방문했으나 정착은 1971년부터였다. 교포도 많지 않은 낯선 땅에서 홀로서기 위해 식료품상회, 가발업을 거쳐 부동산과 무역업에 종사했다. 한미민주연합회장 및 고문, 뉴욕한인체육회장 및 고문등으로 교포사회에 지명도가 높다. 동국대 총동창회 해외 고문 및 뉴욕동창회 회장을 거쳐 지금은 고문으로 있다. 슬하에 치과의사와 변호사 등 31녀의 자녀를 두었다.

     

    인터뷰 신 관 호(본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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