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총동창회
 
 
 
홍영표 동문(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인터뷰
  • 최고관리자 | 2018.12.04 16:43 | 조회 708


    나는 갈등과 대결을 해결하는 소통의 용접공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 중 하나가 홍영표(철학78) 동문일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로서 국회 운영 문제로, 노사 합의문제로, 그리고 여야협상 문제로 분초를 쪼개 일해도 시간이 부족한 형편이다. 집권 여당 원내 사령탑으로서 쌓인 국정 현안을 처리하느라 수면도 제대로 취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홍 동문과의 인터뷰는 힘들었다. 일정을 잡았다가도 국회 회의 일정 변경, 원내대책회의, 노조 대표들과의 협상 일정 등으로 인터뷰 약속이 번번이 밀려났다. 그래서 부족한 부분은 서면 인터뷰로 진행했다. 우선 대학생활부터 질문했다.



     

    대학시절 문학하고 싶었다

     

    -대학 입학 시절의 꿈은 무엇이었습니까.


    문학을 하고 싶었다. 특히 시를 쓰고 싶어서 클래식 음악다방에서 문학인들과 교류하곤 했다. 그것이 소중한 시간으로 남아있다. 현실 문제에 천착하면서도 영혼을 탐구하는 시세계에 빠지면서 젊은이 꿈과 미래를 그리곤 했다.”

     

    -언제부터 노동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었는지요. 당시 사회분위기와 학생운동 경험을 말씀한다면?

    대학교에 입학 후, 클래식 음악감상실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1978년 당시는 박정희 유신 통치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인데, 그땐 개인의 자유를 모두 국가에 저당잡힌 꼴이었다. 머리가 길다고 길거리에서 경찰이 삭발기로 머리를 밀어버리고, 여성들 치마 길이가 길다고 자로 재서 잘라낼 정도였다. ‘금지곡의 전성시대였다. 독재정권에 저항하면 빨갱이로 몰아 영장없이 체포 구금한 뒤 고문으로 자백받아 징역을 10, 15년씩 때리던 때였다.. 그것은 나보다 선배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내가 고교를 다니던 때 기억나는 건 학생들이 교련복을 입고 여의도 광장에서 열병 및 분열식을 가지며 거리행진을 했던 일이다. 완전히 병영국가 체제였다. 박정희·전두환 시절, 나는 질식할 것 같았다.”

    이런 와중에 음악감상실에 모인 청년들과 함께 김지하의 시를 접하게 됐다(지금은 변절했다는 말을 듣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그는 젊은이의 우상이었다). 이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세상에 대한 시야, 폭넓은 세계관을 갖게 되었다. 자연 시대의 소명을 따라야 한다는 믿음이 생겼다. 민주주의, 독재정권의 문제에 대해 현실 인식을 하면서 이제는 실천을 해야 된다는 생각에 유신 반대 민주화투쟁에 뛰어들었다.

     

    민주화 투쟁위해 노동현장으로

     

    홍 동문은 5.18 광주민주화항쟁 이후, 민중이 중심이 되지 않은 학생들만의 시위로는 결코 군부독재를 물리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생이라는 일체의 기득권을 버리고 직접 노동자, 농민이 되어 그들 속에서 살기 위해 노동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때부터 노동운동에 뛰어들었습니까.


    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회색 지식인의 고민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각성 때문이었다. 그래서 직업훈련원을 거쳐 1983년 대우자동차 차체부에 용접공으로 입사한 것이 첫 사회활동의 시작이었다. 이후 우리나라 노동운동사에서 한 분기점을 이룬 대우자동차 파업 문제를 노조 대표로 참여해 몇 차례에 걸친 김우중 대우 회장과의 교섭 끝에 노사문제를 일단락 지었다. 그후 나는 영국 대우자동차 판매법인 주재원으로 런던에 파견되었다. 그곳에서 6년간 일하면서 민주주의 공부를 알차게 했다. 세상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홍 동문은 귀국한 뒤 노무현 정부에 들어가 이해찬 국무총리실 시민사회 비서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한미FTA국내대책본부장을 맡는 등 기업과 정부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했다. 각기 다른 갈등의 조각들을 잘 이어붙인다고 해서 용접공이란 별명을 가졌다.

    이 시간 현재도 자유한국당의 억지를 부리는 사안이 많지만 보수야당을 끝까지 설득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래서 당내에서는 무르지 않느냐는 비판도 있지만, 설득과 포용의 정신을 놓지 않고 있다.

     

    노무현 경선캠프서 정치활동 시작

     

    -앞에서 정치 입문 동기를 자연스럽게 언급했지만 구체적 계기는 어떤 것입니까.


    “IMF시기 대우자동차는 부도를 맞았고, 6년 해외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니 나 역시 구조조정 대상이 되었다. 한국에 집도 없고 생계수단도 막막한 40대 중년이었던 시절이다. 그 즈음 노동운동 후배들을 만났는데 천하의 홍영표가 무슨 돈을 버냐 정치를 해야지!’ 라더군요. 그래서 노무현 후보를 도와주자, 경선에서 떨어지겠지만 4년 뒤에 제대로 된 정당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에 노무현 경선캠프부터 정치활동을 시작했지요. 유시민, 문성근, 정태인씨 등과 개혁국민당을 만들어 조직위원장을 맡게 된 것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게 된 동기다.”

    -정치인생에서 가장 큰 보람은?

    “18대 국회부터 환경노동위원회의 역사와 함께 했고, 환경노동위원장의 임기 마지막을 앞두고 근로시간 정상화를 이룬 일이다. 2003년 주 5일 근무제가 시작됐지만 노동부의 잘못된 행정 해석으로 주 68시간까지 근로를 허용하는 상황이었다. 2013년 근로시간정상화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지만 노사정 협의안이 재계의 반발로 무산되었고, 2017년 여야 3당 간사 합의를 이뤘으나 일부 의원들의 입장차이로 입법이 무산되었다.”

     

    법안 소위 마지막 날 총 7차례의 정회를 거친 긴박했던 하루였는데, 자정이 넘어서 극적으로 의견조율이 마무리돼 합의가 이루어졌다.

     

    대화와 소통은 가장 필요한 덕목

     

    -어떤 원내대표로 기억되길 바라시는지요?


    정치는 대화라고 생각한다. 갈등과 반목을 넘어서서 대화를 통해서 토론하고 타협하면서 합의에 도달하는 일하는 국회, 성과 내는 국회를 이끈 원내대표로 남고 싶다.”

     

    -좌우명이 있다면?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용접공으로 일을 했던 나는 언제부터인가 스스로를 이 시대의 용접공이 되리라고 생각해왔다. 런던에서 영업 일을 했을 때도 자동차 영업 일이 또 연결하고 소통하는 용접 일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을 느꼈다. 국무총리실의 시민사회 비서관이 되어서도 사회와의 가교와 소통, 즉 사람과 사람, 일과 일을 붙이는 용접 일이라고 생각했다. 방폐장문제, 혁신도시 문제, 저출산고령화 문제 등 사회갈등과 문제를 땜질하고 수리하는 그런 일을 했다. 조용한 가운데 모두 잘 마무리했다.”

     

    외관부터 유연해보이는 인상이다. “이러다 보니 다음엔 더 큰 갈등이 쌓여있는 FTA를 다루라는 과제까지 주어지게 됐다고 웃었다. 대화와 소통,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가족관계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고, 취미활동은 어떻게 보내시는지?


    두 딸을 둔 아빠다. 취미로 요가를 좋아하는데 시간이 없어 하루 30분 정도 스트레칭으로 대신하고 있다. 4~5년 전부터는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는데, 지역구인 인천 부평구 을에서 국회까지 30Km1시간 40분에 달려온다. 바쁜 의정활동 중이지만 일주일에 2-3회는 자전거로 출퇴근하려 하고 있다.”


    사회에 눈뜨고 정치에도 관심을

     

    -모교나 총동창회, 재학생들에게 하고싶은 말은?


    모교 후배들에게 먼저 한마디 한다면, 학생으로 할 수 있는 일과 꼭 해야 할 일을 찾아 행동했으면 좋겠다. 요즘은 청년 취업이 어려워서 취업에 도움되는 수업을 듣고 인맥을 쌓기 위한 동아리 활동을 주로 한다고 알고 있다. 캠퍼스의 낭만이나 젊은 날의 사랑을 할 수 있는 여유도 없다고 한다.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지만, 사회에 눈뜨고 특히 정치에 관심을 가질 것을 당부하고 싶다. 공기처럼 정치는 우리의 전부를 차지한다. 그런데도 나와는 상관없다고 외면한다. 그럴 때 나쁜 정치가 개입할 소지가 있다. 독재자들은 언제나 정치에 관심두지 말고 공부에 전념하고, 장사에 열심히 하라고 한다. 그런 사이 독재자는 자기 뜻대로 시민의 삶을 앗아가버린다. 고대 아테네 페리클레스는 당신이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해서 정치가 당신을 자유롭게 두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정치참여 거부에 대한 불이익 중 하나는 당신보다 하등한 존재에 지배당하는 것이라고 플라톤도 말했다.”

     

    그러면서 홍 동문은 정당에 가입하거나 선거에 참여하는 방법도 좋고 관심 있는 분야에서 활동하는 방법도 있다고 조언했다.

     

    동문사회에 대해서는 동국인의 결속과 우애를 느낀다면서 총동창회가 구심점이 되어 30만 동문 조직을 이끌어간 데 대해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동문사회로부터 배우는 입장이라면서 언제나 모교와 함께 동문사회와 함께 하는 동국인이 되겠다고 마무리했다.


    한편 홍 원내대표는 인천 부평구을 지역구에서 내리 3선을 한 민주당 중진이며,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정리=신관호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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